「사약과 유배에 관하여 몰랐던 사실들.」
조선 시대 극악의 효과를 가졌던 죽여주는 약이 있었다.
사실 하나, 사약은 사약(死 : 죽을 사, 藥 : 약 약)이 아니다?
그렇다.
사약이 죽여주는 약인 것은 맞지만 그 뜻은 '죽을 사'가 아니라, '賜 : 하사할(줄) 사'였다.
즉 하사해주는 약이라는 말인데, 누가?
당연히 임금님께서 하사하시는 약이란 뜻이었다.
정말, 사약은 임금님이 주신 선물(?)이라고 해도 무방할 정도였다. 왜?
사형을 받을 만큼 중죄인이지만 목을 자르거나, 사지를 찢는 등의 참형은 피하여 죄인이 부모가 주신 몸을 상하게 하는 불효만은 저지르지 않게 하려는, 임금의 배려가 담겨 있었기 때문이었다.
즉 사약은 임금님의 마지막 은총이었던 것.
그렇기 때문에 사약을 받은 죄인들 대부분은 임금님의 은총에 감사하며 죽어갔다고...
그 만큼 사실 사약은 아무나(?) 마실 수 없는 약이기도 했다.
*주로 왕족이나 높은 관직의 사대부들에게 내려졌다.
많은 사극에서 사약을 받는 죄인들의 모습을 생각해보면
그들은 사약 한 사발도 다 마시기 전에 피를 토하며, 장렬히 최후를 맞이한다.
또 얼마 간의 시간이 지나서야 중독 증세를 보인다.
게다가 위산과 간의 작용으로 독성분의 90% 가량이 사라지기 때문에, 사약의 성분들은 위에서 활성이 가장 약해지는 특성도 가지고 있다.
이런 이유로 죄인에게 사약을 먹인 후 뜨거운 온돌방에 가두어 독성분이 신속히 퍼지도록 하는 경우도 있었다고...
이렇듯 사약의 효과가 나타나는 시간은 체질에 따라 천차만별이었는데, 기록에 따르면 어떤 죄인은 사약을 무려
18잔을 마시고도 멀쩡한 경우 ˚도 있었다고...
*임형수(1514~1547년)는 18잔을 먹고도 멀쩡해 결국 스스로 목을 메 죽었다고 한다. 사진은 내용과 무관
이렇듯 사약을 포함하여 어떤 방식이든 사형은 죄인이 받는 최고의 형별이었는데,
조선 시대에는 사형보다는 한 단계 낮은 '유배형'이 존재했다.
이는 누구나 아는 사실이다. 그런데.
사실 하나, 1178km...?
죄인을 죄인의 고향(혹은 수도)과 멀리 떨어진 외지로 보내는 형벌, 유배.
그 유배는 죄인의 죄질에 따라 거리가 천차만별이었는데,
그 거리는 최소 '600리'에서
2천리
2천5백리
3천리
이것을 km로 환산하면 각각 '235km', '785km', '981km', '1178km'였다.
가능했다.
어떻게? 목적지로 바로 가지 않고 여기저기 빙빙 돌아서 어떻게든 형에 맞는 거리를 채웠다고...
(국토대장정이 따로 없었다.)
사실 둘, 유배지까지 이동할 때 탔던 것은 '소'가 아니었다?
사극에서 유배지로 떠나는 죄인의 모습을 떠올려보자.
소달구지는 '사형'에 처하는 죄인들에게만 적용되었던 것이고,
유배형을 받은 죄인은 '말'을 타거나 걸어서 갔다.
사실 셋, 유배 한 번 가면 집안이 거덜났다?
유배 비용은 죄인이 내는 걸로...
짧게는 한 달에서 길게는 몇 주에 걸쳐 이동해야 했던 유배지로 가는 길,
사실 그 기간 동안 들어가는 모든 비용은 죄인의 사비로 부담해야 했는데...
출발 할 때 탈 말을 사는 비용에서부터 숙박 비용, 음식 비용, 거기에 동행하는 감시관들의 숙식까지..
이 때문에 진짜 집안이 탈탈 털렸던 죄인 ˚도 있었다고 한다.
*선조 24년, 홍성민은 말 여섯 필과 의식을 장만하는데 재산을 털어야만 했다는 일화가 전해진다.
사실 이도 인맥이 좋다면 상관 없는 일이기는 했다.
왜냐하면 유배지로 가는 길목마다 지인이 있다면 그들에게 숙식을 제공받을 수 있었기 때문.
(원칙적으론 금지했으며 잘 지켜지지 않았다.)
선조 시대 이항복은 유배지로 가는 29일 동안 28일을 지방관들에게 후한 대접을 받았다고 하며,
경종 시대 윤양래라는 죄인은 너무 많은 물품들을 제공 받아 말이 무게를 감당할 수가 없었을 정도라는 일화가 전해진다.
사실 셋, 유배에는 정해진 기간이 없었다?
왕 맘.
그렇다. 얼마나 유배생활을 할지는 온전히 왕의 마음이 바뀌나 안 바뀌나에 달려있었다.
사실 넷, 잠자는 숲 속의 공주 부럽지 않을 가시나무 요새?
집 주위에 가시나무를 둘러싸고, 바깥문은 항상 자물쇠로 잠그고, 음식은 10일에 한 차례씩 주며,
또 담 안에 우물을 파서 알아서 먹게 하고, 외부인과 철저히 단절시켰던 유배형.
교과서엔 절대 안나올 우리나라 역사 상식 하나 - 막이슈 - 쭉빵카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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