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시대에 얼음을 쓸 수 있었을까.

written by 뻬호
지식· 2018. 7. 27. 11:28

「겨울에 채취한 얼음을 여름에 쓴다.」

한 번쯤은 들어보셨을 겁니다.

서빙고(西氷庫)라고. 


얼마 전엔'바람과 함께 사라지다.' 라는 서빙고를 터는 내용의 영화도 개봉했으니

역사에 조금만 관심이 있으신 분이라면 한 번쯤 들어본 이름입니다.



하지만 사실 조선시대엔 서빙고 뿐 아니라 많은 빙고(氷庫)가 존재했습니다.


한양에는 대표적으로 3개의 빙고가 존재했는데,


서빙고 - 한양의 각 부서, 관원, 혹은 귀빈을 위해 사용하던 얼음을 보관하는 곳.

동빙고 - 국가의 제사용 얼음을 보관하는 곳.

내빙고 - 왕실에서 사용하기 위해 궁궐에 만든 빙고.


가 있었고 그 이외에 지방에도 관아를 위한 빙고가,

그리고 조선 중후기부터는 개인을 위한 사빙고 역시 보편적으로 보급됩니다.



이렇게 말을 해도 조선시대에 얼음을 보관해봐야 얼마나 보관할 수 있었겠어? 하시겠지만 

만기요람의 기록에 따르면,


내빙고 22,623정, 동빙고에 10,244정을, 서빙고에 134,974정을 저장했다고 합니다.

얼음 1정(丁)의 크기는 정확히 알 수 없으나

녹는 걸 방지하기 위해 기본적으로 두께가 12cm 이상이 되야했다하고 

둘레가 180cm 이상 되야했다고 하니 얼마나 많은 얼음이 저장되었을지 상상이 되시나요?


현대식 단위로 계산하면 서빙고에 들어간 얼음의 부피만 약 3000m^3인데..

(혹시 틀렸다면...개망신인데-_-;;)



서빙고에만 이런 게 약 3천개가 넘게 저장된 것입니다.

한양에 그정도 크기의 빙고를 지을 수 있었을까 싶기도 하지만..


빙고를 고치는 데 동원된 인력만 800명이었다가

너무 많은 거 같아 성종 때 300명으로 줄이라 한 기록을 봐도 확실히 그 규모가 예사롭지 않습니다.



하지만 이런 엄청난 얼음량이 저장되야한다는 건 반대로 말하면

그 얼음을 채취하고 보관하기 위해 엄청난 노역이 부과되었다는 말입니다.

게다가 얼음이란 특성상 한 해 가장 추운 시기가 얼음을 채취하기 가장 좋은 시기입니다.

당연히 노역 중에서도 가장 고된 노역이라 할 수 있지요.


그 때문에 왕은 노역에 동원된 사람들에게 술과 생선, 약을 나누어주며 

그들의 노역을 최대한 위로하기 위해 노력했습니다.



이 얼음 채취는 국가의 가장 중요한 일 중 하나로써

비를 내리는 기우제와 같이 날이 너무 따뜻해 얼음이 얼지 않는 경우 

날을 춥고 눈을 내리게 해달라고 사한제(司寒祭)를 지내달라 하기까지 했지요.



이렇게 보관된 얼음을 나뉘어주는 걸 반빙이라하여,


조선 조정의 각 기관과 종친, 문무관, 내관

그리고 70세 이상의 퇴직한 벼슬아치, 활인서(한양에서 백성을 무료로 치료해주던 기구)의 환자들

의금부, 적옹서 등에 갇힌 죄인들에게 나누어 주었다고 경국대전에는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럼 반빙을 하는 기준은 무엇이냐.

기본적으로 궁궐의 전과 궁, 시녀, 내관, 각 부서의 벼슬아치 등에게 일정량이 지급됐고


또 패빙(牌氷)이라하여 얼음을 가져갈 수 있는 권한을 알려주는 호패가 있었는데

일종의 얼음 교환권이랄까요.

이 패빙 하나에 얼음 10정을 가져갈 수 있는 권리가 주어졌습니다.


보관만큼이나 힘든 게 얼음 운송 방법인데, (여름엔 얼음을 들고가다가 다 녹아버릴 수 있으니)

그 정확한 방법은 현재 알 수 없으나 알려지고 있는 방법 중 하나는 이끼를 이용하는 것이었다고 합니다.

이끼를 얼음 주변에 대고 운반하면 녹지 않게 얼음을 가지고 이동할 수 있었다 하네요.



이렇게 여름에도 얼음을 사용할 수 있게 해준 빙고는

세종 전까지는 목조로 만들어졌다가 너무 자주 수리를 해야하고 나무 값도 비싸 백성들의 고생이 심하다하여 

석재로 짓게 하였는데 그 모양이 대충...



이랬습니다.



그럼 얼음을 한 여름에도 보관하는 원리는 무엇일까.



석빙고의 문을 열 때마다 더운 공기가 내부로 유입되는데 

더운 공기는 위로 뜨는 성질이 있고 석빙고 안의 천장 사이의 빈 공간이 열을 끌어 당깁니다.

이렇게 천장으로 빨려진 공기는 위의 환풍구를 통해 빠져 나감으로써 내부 온도를 낮게 유지할 수 있는 것이죠.


또 뒤엔 배수시설도 있어 녹은 얼음물이 다른 얼음을 더 녹게 하지 않기 위한 것이고,

석빙고는 약간 경사지게 지어져 녹은 물은 바로바로 배수됩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얼음 사이사이에 서로 붙지 않게 하기 위해 쌀이나 겨를 놓고

벽과 천장 등에도 볏짚을 채워 넣어 열의 차단을 최종적으로 마무리 짓지요.

(볏짚은 사이사이에 공기를 촘촘히 함유하고 있어 현대의 스티로폴과 같은 역할을 한다고 합니다.

그리고 열보존율에서 스티로폴과 거의 차이가 없다고 하네요.)



그럼 이 단열효과가 어느정도였느냐 하면,


'남대학교 장동순 교수팀의 실험에 의하면 빙고에 얼음을 약 50% 넣은 다음 짚을 채워 넣었을 경우 

3개월 후 약 0.04%, 6개월 후 약 0.4%의 얼음 양이 감소한 것으로 나타났다.'

(다른 연구에 의하면 18%정도까지는 녹는다는 의견도 있습니다.)


라고 할만큼 얼음 보존정도가 엄청났습니다.



이렇듯 놀라운 성능을 보였던 조선시대 빙고는,

안타깝게도 한양내에 있었던 동서빙고와 내빙고는 남아있지 않고

각 지방 관에서 사용하던 석빙고만 7개가 남아 있습니다.


1)청도 석빙고(보물제323호), 

2)경주 석빙고(보물 제66호), 

3)안동 석빙고(보물 305호), 

4)현풍 석빙고(보물 제673호), 

5)창녕 석빙고(보물 제310호), 

6)영산 석빙고(사적 제169호), 

7)해주 석빙고(북한 국보 제69호)


이렇게 총 7개가 남아있으며, 

모두 숙종과 영조시대에 지어진 것들입니다.

크기는 각기 다양한데 가장 작은 건 10평 남짓이고 대부분이 30평이 넘는다고 하네요.



그럼 왜 이보다도 규모가 더 컸을 것으로 추정되는 서빙고는 남아있지 않았을까..

한다면 그 힌트를 인조실록에서 찾을 수 있습니다.


인조 2년 한강 가의 주민들이 서빙고를 불태우는 사건이 발생합니다.

어라? 돌로 지어진 얼음 보관소가 어떻게 불이 났을까... 하니 이해가 안 되시죠?


사실 세종 시절 빙고를 석재로 지으라 명했지만, 

이미 지어 놓은 빙고 대부분은 목재로 지어졌었으며 효율성 면에서 석재와 목재의 차이가 크지 않았기에

빙고는 목재로 이용되는 게 일반적이었습니다.


영조 때도 홍봉한이 목빙고를 석빙고로 고쳐 만들자 요청하고 내빙고부터 석빙고로 만들자하니

그때까지도 도성의 빙고는 목빙고였던 것이지요.



현재 남아있는 지방 관아의 빙고는 목빙고에서 석빙고로 고쳐 지어져 현재까지 남아있을 수 있었지만

그 크기 때문인지 도성의 빙고는 목빙고가 유지되어 현재 남아 있지 않은 것으로 추정됩니다.

(혹은 임진왜란 등으로 소실되었고 새로지은 것이 목빙고였다고 추측하기도 합니다.)


사실 동빙고의 크기가 현존하는 석빙고의 크기만했다 하더라도 30평이고

서빙고의 크기는 동빙고의 13배 쯤이니 약 400평 정도의 크기인데 

그걸 석재로 짓는 노역을 백성들에게 한 번에 부과하는 게 여간 부담스럽지 않았겠지요.



여하튼 빙고의 보급은 한양 뿐 아니라 각 지방에서도 일반적이었으며,

의외로 우리 선조들이 한 여름엔 얼음을 구경도 못해보고 헥헥대지는 않았던 것으로 보입니다.


냉장고 발명 이전 얼음 사용은 조선 뿐 아니라 다른 국가에서도 분명 이루어졌지만

여름철 보편적 얼음 사용은 조선이 거의 유일했다. 라는 말이 괜히 나오는 게 아닐 정도로

그를 확인시켜줄 기록과 유물이 많이 남아있음은 현대의 우리 후손들의 축복이 아닐까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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